AI가 번역해주고, 이메일을 대신 써주고, 시장 조사까지 해주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48년 동안 홍콩, 미국, 베트남, 중동 거래처와 일해본 제 결론은 단순합니다. 도구는 바뀌어도 원칙은 거의 안 바뀝니다.
저는 1978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해외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지금 74세가 된 지금도 C&C Lightway와 Bomanite Korea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텔렉스 시절부터 이메일, 화상회의, 그리고 이제 AI까지 다 겪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살아남게 해준 원칙은 세 가지였습니다.
원칙 1. 답은 빨리, 약속은 더 천천히
1987년 홍콩 바이어와 처음 큰 거래를 하던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물량을 빨리 잡고 싶은 욕심에, 공급 가능 여부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합니다"라고 먼저 말해버렸습니다. 그때는 팩스 한 장 보내는 것도 큰 일이었고, 공급처와의 확인에도 하루 이틀이 걸렸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실제 출하 가능 수량이 제가 말한 수량보다 15% 부족했습니다. 홍콩 바이어는 크게 화를 냈고, 저는 손해를 보전하느라 마진의 상당 부분을 잃었습니다. 그때 배웠습니다. 답장을 늦게 하는 것보다, 성급한 약속이 훨씬 비싸다는 것을.
지금은 AI 덕분에 답장을 5분 만에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급 일정, 가격, 최소주문수량(MOQ), 납기는 여전히 사람이 확인해야 합니다.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문장을 써줘도, 실제 재고는 AI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원칙 2. 상대 언어보다 상대 체면을 먼저 본다
2002년 런던 출장에서 한 번 크게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영어는 잘 통했습니다. 문제는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식으로 빠르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편이었고, 상대는 우회적 표현을 더 선호했습니다. 회의 후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현지 파트너가 조용히 말해줬습니다. "내용은 맞았지만 너무 straight 했다"고요.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상대 문화와 체면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원칙은 중동에서 더 강하게 배웠습니다. 2023년 카타르 쪽 프로젝트 관련 커뮤니케이션에서도, 같은 거절이라도 표현 하나에 따라 관계가 달라집니다. AI는 문장을 예쁘게 만들어주지만, 어느 정도까지 강하게 말할지, 어디서 한 발 물러설지는 결국 관계를 아는 사람이 판단해야 합니다.
원칙 3.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
해외 비즈니스에서 제일 위험한 말은 이것입니다. "그때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요."
2019년 베트남 거래처와 단가 협상할 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 1차 오퍼 가격을 기준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2주 전 메시지에서 언급한 샘플 기준 가격을 기준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기록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 뒤로는 무조건 남깁니다. 회의 후 5줄 요약, 전화 후 확인 이메일, 변경사항 표 정리. AI가 생긴 뒤에는 이 기록 정리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회의 내용을 붙여넣고 "핵심 결정사항 5개로 요약해줘"라고 하면 초안이 금방 나옵니다. 그러나 기록 자체를 남겨야 한다는 원칙은 예전과 똑같습니다.
✅ 글로벌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체크리스트
| 체크 항목 | 왜 중요한가 |
|---|---|
| 날짜를 숫자+월명으로 명확히 썼는가 | 03/04/2026은 국가마다 해석이 다름. "April 3, 2026"처럼 써야 안전 |
| 금액 통화 단위를 정확히 썼는가 | $만 쓰면 USD인지 HKD인지 혼동 가능 |
| 납기 표현이 확정인지 예상인지 구분했는가 | "estimated"와 "confirmed"는 완전히 다름 |
| 전화 후 요약 이메일을 보냈는가 | 기억보다 기록이 우선 |
| 상대 문화에 맞는 톤을 썼는가 | 미국식 직설, 중동식 관계 중심, 동남아의 완곡함 차이 고려 |
| AI가 작성한 문장을 그대로 보내지 않았는가 | 사실관계와 뉘앙스 최종 검토 필요 |
🐯 AI 시대에도 안 바뀌는 이유
2023년 초부터 ChatGPT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 3년째입니다. 이메일 속도는 빨라졌고, 번역 품질은 좋아졌고, 자료 조사 시간은 확실히 줄었습니다. 그런데 거래가 성사되는 이유는 여전히 신뢰, 배려, 기록입니다.
AI는 훌륭한 보조자입니다. 하지만 생존법은 따로 있습니다. 그 생존법은 1980년대에도 통했고, 2026년에도 통합니다. 저는 그래서 AI를 믿되, 원칙은 더 믿습니다.
